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군이 되어보세!/개변된 역사/2부 (문단 편집) ==== 소수민족 ==== * '''왜인여진족''' 1부에서 백두산 부근에 여진족 과부들을 아내로 얻고 정착한 8,300여 명의 일본 쇼니 군 포로들의 후예들. 즉 일반적인 여진족들과는 언어도 정체성도 아예 다른 혼혈 민족인데, 2부 시점에서는 그동안 인구가 더 늘었다. 2부 18장 3화에 언급된 것으로 보면 총인구 6만에 현시점으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만 2만이 넘는다고 한다. 일본식 검술과 여진식 기마술을 두루 갖춘, 충성심 높고[* 왜인여진이 어째서 조선에 충성하는가를 고찰해 보자면, [[전국시대(일본)|일본 전국시대]] 때 '''싸움에서 패배하고 사로잡힌 [[포로]]의 대우가 어땠는지'''를 보면 짐작 가능하다. 전국시대 때 포로라 하면 '''[[인신매매]]상의 좋은 자금 공급원, 그러니까 인간이 아니라 상품 취급받는 노예 신세'''나 다름없었다. 당장 1부의 규슈 정벌 파트에서도 조선군이 규슈에서 쇼니 군을 개박살낸 이후, 일본 현지의 상인들이 조선군에게 쇼니 군 포로들도 다 사겠다고 제안했으나, 조선군은 주인공의 어명 때문에 노획한 갑옷과 무기만 팔아치우고 포로는 부상이 심해 바다를 건너기 힘들어 보이는 자들만 팔았다는 묘사가 있다. 그런데 이때 붙잡혀 조선으로 압송된 쇼니 군 포로들은 자기 나라에서 포로들이 받는 대우가 으레 그렇듯 누군가의 노예로 팔려가 고달프게 살긴커녕, 오히려 좀 추운 지방이지만 살 땅도 주고 가정을 이루고 정착할 수 있게 여진족 과부들까지 줬다. 당시 쇼니 군 포로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포로인데도 이런 특혜를 받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을 것이고, 조선에 정착한 뒤 본인의 자식들이나 손주들에게도 조선이 어떤 은혜를 내려주었는지 입이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해서 자식들이나 손자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머리에 심었다고 한다면, 왜인여진이 어째서 조선에 충성하는 민족이 되었는지 대충 이해가 된다.][* 더군다나 왜인여진은 부계가 일본이니 봉건제 사회에서 오래 살아왔을 것이고, 이 쇼니 군 포로들은 중앙에서 일일이 지방관을 파견하는 조선식 관료제에 익숙하지 않았을 테니 자기 위로 사또-감사-그 외 고위관리-왕 등이 줄줄이 있는 체제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을 공산이 높다. 영주가 대대로 다스리는 지방에서 영주에게만 충성하며 평생 살다가 몇 년 주기로 지방관을 갈아치우는 동네로 이사 왔으니 뭐... 게다가 오랫동안 통일국가였으며 중앙집권이 잘 된 나라에서 살던 조선인들과 달리, 이들은 수백 년간 지방별로 쪼개진 나라에서 살던 사람들로 국가에 충성한다는 개념이 희박하며 자신을 다스리는 영주에게 충성하는 것이 익숙하다. 아버지인 왜인들도 이런데 어머니들은 아예 부족사회 출신이니 더 말할 것도 없고. 부모로부터 이런 교육을 받은데다 수백 년 동안 조선 땅에 사는 외국인 취급을 받아 조선 체제에 섞여들기보다 외인부대로 대접받았으니 중앙집권 체계 하의 조선식 사고가 익숙지 않을 만도 하다. 따라서 알기 쉽게 대충 '영주님 대신 제일 높으신 나으리'에게 충성하면 되는 건가 생각했을 것이고 그게 조선 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싸움도 잘하는 최정예 기병으로서 2부에서 주인공은 조선판 [[카자크]]라고 생각하고 그 오만한 신립조차 이들의 실력은 인정해 해서부 정벌전 후반에는 이들만 이끌고 공격할 정도다. 무자호란 때 장백여진 부족은 왜인여진이 나타나 위협만 해도 흩어져 달아나버릴 정도로 조선을 적대하는 부족들에겐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다. 일본어, 여진어, 조선어가 섞인 고유의 [[크레올어]]를 써서 통역 없이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전통을 잊으면 안 된다며 여전히 일본어 구사가 가능한 인원이 소수 남아있으며 권율은 교스케라는 일본어가 가능한 왜인여진인 병사를 일본으로 다시 귀순하려는 도왜로 위장시켜 일본군을 유인하기도 한다. 왜인여진족은 오도리 부족과 더불어 계속해서 전쟁에서 조선 측으로 큰 공을 세우고 있기에 앞으로도 조선과의 특별한 관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장비도 중구난방으로 물려받은 왜식 갑옷, 여진식 가죽 갑옷, 조선식 두정갑을 입은 인원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고. 이들은 전사하더라도 조선인 병사들과 달리 유족에게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는 대신 약탈이 허용된다고 한다. * '''도왜, [[항왜]], 신왜, 맹왜, 왜노''' 도왜는 경인왜란 이전에 일본에서 미리 건너와 조선에 귀순한 왜인들. 건너온 왜인이라 하여 도왜라고 부른다. 시초는 차차의 호위 명목으로 일본에서 추방된 사나다 마사유키(사마유), 사나다 노부시게(사노부) 부자와 200명의 병사들. 두 번째 집단은 오다에게 할복을 명령받았으나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조선으로 탈출한 시마즈 토시히사(남도사)와 가신들. 이후 사나다 부자와 시마즈 토시히사가 조선 왕의 신하가 되어 잘 나간다는 소문이 왜국에 퍼지자 히데요시의 규슈 정복 이후 아소 코레미츠, 스즈키 요시유키([[김충선]]) 등 영지를 잃은 자들이 조선으로 대규모 망명해 그 수가 수천에 이른다. 사나다와 시마즈 일가까지는 왜별기로 편성했으나 이후 도왜들의 수가 급증하자 이들은 일단 거제도에 정착시켰고, 이들 중 정예한 이들은 왜별기로 옮기고 등선군 등으로도 편성하여 쏠쏠한 전력으로 써먹는다. 전쟁이 일본에게 불리해짐에 따라 항왜 집단도 생겨나고 있는데[* 왜군들이 회의 중에 조선 수군에 도왜와 다른 투항자들이 있음이 언급되었다. 또 이순신은 포로로 잡힌 왜선의 수부들은 전후 석방과 귀국을 약속하며 노군으로 부리고 있다.], 항왜들은 전쟁 전부터 조선에 충성한 도왜보다 대우가 낮을 가능성이 높다. 전쟁 종결 후 집계한 포로의 숫자는 총 7만 5천여 명으로 그들 중 사무라이 계급의 5천여 명은 병력으로 편입할 계획. 전쟁이 끝난 후에 일본에 닥친 기근을 견디지 못하고 건너오는 왜인들은 신왜라고 불리는데 8할은 일기도인, 1할은 구주인, 1할은 대마도 수비병이다. 이들과 구분하여 을미동정 때 조선과 동맹을 맺은 도쿠가와, 구로다, 호소카와 등등은 맹왜라고 불린다. 을미동정이 끝난 후 도왜 중 사나다, 아소, 시마즈 가문의 도왜들은 조선에게서 규슈에 영지를 받은 주군을 따라 다시 규슈로 돌아가 살면서 조선의 동쪽 방패가 되기로 한다. 을미동정 이후 조선에 강제로 끌려온 왜인들은 왜노(왜인 노비)가 되어 여러 사업장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된다. 너무 늙은 왜노들은 노인이라도 일손 하나가 아까운 대남도로 보내진다.[* 그 중 하나가 왜노로 위장한 원균.] 특히 부안의 네덜란드계 상인들은 왜노를 흑인 노예 다루듯 채찍질하며 학대해 조선인들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양응룡의 난 정벌 당시 해방을 조건으로 자원병을 모집했는데 무려 7000명이나 자원한다. 타치바나 무네시게가 이끌고 온 왜병들은 보수로 최소 1인당 3명의 포로를 노예로 받고, 왜노로 자원해 참전한 자들은 자유인이 된다. 이들 말고도 전쟁 중 포로로 잡은 왜인들을 각국에 노예로 팔아치웠는데 명나라와 동남아는 물론 무굴제국까지 왜인 포로들이 흘러간다. 그곳에서도 전투 기술을 사용해 아주 쓸만한 병력 자원으로 평가받게 되고 좀 더 왜병을 구할 수 없냐고 물어볼 정도. * '''오도리 부족''' 1부에서 동청례[* 부친은 야인(여진족) 오도리 부족의 귀족이고 모친은 조선인인 혼혈인. 오도리 부족 내에서도 세력이 큰 귀족이며 조선에 충성하는 친 조선파 야인(여진족)의 대표 격인 실존 인물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중종반정]] 때 능지처참을 당해 죽었다.]가 원 역사처럼 [[중종반정]]으로 죽지 않음에 따라 실제 역사와 달리 오도리 부족 역시 친조선 부족으로 남아 계속해서 조선군의 기병 전력으로 활약하게 된다. 주인공은 오도리 부족을 일종의 조선판 [[카자크]]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며, 초대 부여주 병마사로 임명된 동청례 사후에도 오도리 부족은 조선에 충성하며 조선군의 기병 전력의 상당수를 담당하고 있다. 오도리 기병들로 스페인 장인들이 만든 흉갑과 김지가 만든 플린트락 권총으로 무장한 퀴레시어를 편성해 전투에 투입할 정도. 물론 조선 조정도 오도리 부족은 그만큼 많이 챙겨주고 있다. 오도리 부족은 왜인여진과 더불어 조선에 충성스러운 부족인 데다 계속해서 전쟁에서 조선 측으로 큰 공을 세우고 있기에 앞으로도 특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부족들이 만주에서 힘들게 사는 동안 오도리 부족은 함경도에서 반 자치 형태로 세금만 바치고, 전쟁 나면 기병으로 싸우는 것만 빼면 아무 부담 없이 편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여진족들은 오도리는 여진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 있어도 절대 조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주인공은 오도리족을 매우 신뢰하여 남만갑과 [[플린트락]] 권총을 나누어 주어 써먹는다.[* 이 때 주인공이 '왜 오도리에게 총을 주냐고? 내가 이들을 못 믿으면 누구를 믿는단 말인가!'라는 독백이 있다.] 경인왜란에서도 전주성에서 방어군으로 활약하고, 식량을 찾으로 분산된 일본군 부대를 격파하는 등 활약한다. 일본군은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자신들이 조총을 쏘기도 전에 백발백중으로 마상철포를 쏘며 달리는 오도리 기병을 '전주 기병'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한다. 논산대첩에서 최정예 기병으로 참전하여 왜군 섬멸에 큰 공을 세운다. 이후에도 을미동정, 사르후 전투 등에 계속 참전하여 공을 세움으로써 자신들이 조선에 충성함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사르후 전투에서도 건주여진 병사들이 '저 조선의 개놈들이!'라고 했을정도. * '''[[백정]]''' 1부에서 고다지, 김병천 등 백정들이 대활약해 관직에 오른 바도 있고 2부에서도 백정 출신인 임꺽정과 서림 등이 무관으로 크게 성공하는 등 원 역사보다는 취급이 좋아졌다. 그러나 1·2부 사이에 조선 전역이 개간되며 대부분의 백정들의 전투 능력이 이제 별 볼일 없어졌다.[* 서림과 임꺽정이 출세한 건 그냥 본인들의 재능이 워낙 뛰어난 덕.] 경성군은 백정 혈통인 중전을 두었음에도 아직도 정착하지 않고 약탈을 벌이는 일부 백정들을 골칫거리로 여겨서 죄다 북방으로 추방해버렸고 부여주에서 백정들은 여진족 부락들과 서로서로 약탈하면서 살게 된다. 주인공은 속말주 개척과 함께 북방으로 추방된 백정들을 왜인여진, 오도리에 이어 3번째 조선판 카자크로 만들 계획. * '''[[백인|남만인]]''' 세스페데스를 비롯한 선교사들, 로드리고 대위를 비롯한 용병들, 펠리페 2세가 보내준 기술자들 등의 유럽인들이 조선에 왔으나 아직 극소수다. 주인공은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이들이 조선에 눌러앉힐 생각으로 조선 중인 여자와 결혼을 주선하고 결혼할 시 급료도 올려주고 집도 제공하고 있다. 이에 용병들과 기술자들 중 태반이 조선 여자와 결혼해 정착했다고. 주인공은 유럽은 사실 남쪽이 아닌 서쪽이므로 남만 대신 서양이라는 표현을 정착시키려 하나 남만이라는 표현이 여전히 더 많이 쓰인다. 유럽 여성은 조선에 온 적이 없으나 이항복은 유럽 여성들이 성적으로 개방적이라는 말을 듣고 유럽 여인과의 관계에 흥미가 생긴 듯하며 견서사가 유럽 여인을 데려오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더니 제2차 견서사로 유럽에 가게 되어 꿈을 이루게 되었다. 2차 견서사를 통해 네덜란드인들과 보헤미아인, 용병 및 기병 훈련교관으로서 기능할 [[윙드 후사르]]와 [[장다르메]]들이 조선에 넘어왔다. 이주민들을 주인공의 명령으로 부안에 정착해서 부안을 중심으로 서양 문화와 기술이 퍼질 듯하다. 그 후 3차 견서사를 따라 프랑스인들과 잉글랜드인, 스코틀랜드인들도 다수 조선에 이민 오며, 프랑스인들은 마포, 영국인들은 동래, 스코틀랜드인들은 내금위 용병으로 각각 거류지를 마련해 주기로 한다. 여기에 이기빈의 천회사 함대가 모카 항을 점령했을 때 모카항 노예시장의 노예로 있던 노예들 372명을 천회사 함대 승무원으로 현지 징발(소수의 여성 노예들도 데려가기로 결정)하면서 슬라브계 백인 노예 출신들도 조선에 눌러앉게 되며, 맥클로스키가 지휘하는 금군 숙호위 소속으로 편입된다. * '''[[화교|대국인]]''' 만력제가 보내준 당선, 탄광 관련 기술자들 등 명나라 사람들도 유입되었다. 주인공은 이들도 눌러앉길 원해서 미혼인 자들은 조선 여인과 혼인시켜주고 기혼자들은 명에 연락해 기술자들이 외로워한다며 가족들을 데려오도록 한다. 사르후 전투에서 명군이 대패한 후 유정 휘하 사천병 생존자 3천이 조선으로 넘어오는데, 명나라로 돌아가면 패전 책임을 물어 윗끝부터 아랫끝까지 싹 처형될 상황이라 결국 조선에서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일단 밥값이라도 하기 위해 왜란 때 큰 피해를 입은 대구 지역에 배치된다. 유정 본인은 조선에 감사함은 별도로 명나라 신하인만큼 죽어도 자신이 귀부할 순 없지만 부하들이나 자식들이 귀부하는 건 막지 않겠다고 한다. 한가지 문제는, 명나라 군대 이미지와 달리 지휘계통도 살아있는 정예인 사천병이라서 딱히 대민피해 끼치는 건 없지만, 건주위에게 당한 것도 있고 처지가 처지인지라 여진족만 보면 '''눈이 뒤집혀져''' 무조건 달려들어 싸움을 벌였다는 것. 도성에서 경군 소속으로 복무하는 여진족 군사들만 보면 빡이 돌아서 싸움(칼부림 포함)을 걸고 다닌 바람에, 사천병들이 대구로 이주하기 전 임시 주둔하던 용산의 사천병 병영 근처에 얼쩡거리는 여진족 출신 군사들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시점에서 여진족 출신 경군 군사들은 혈통만 여진족이지 조선 사람이 다 되었기 때문에, 빡친 사천병들에게 공격을 받으면 맞서 싸우는 대신 군기대를 부르는 것으로 대응했다. --조선인화 이전이었으면 진작에 사천병들한테 주먹 날라갔다-- 조선군에 복무하는 여진인 전체수는 사천병보다 많지만 이들은 각기 다른 부족끼리 섞인 터라 같은 여진인이 구타 당해도 부족이 다르면 남 보듯 넘어가는 통에 맞싸움이 잘 벌어지지 않았다.] * '''[[묘족|묘노]]''' 양응룡의 난 토벌에 조선군이 파병될 때 그 대가로 포로로 잡은 반란군 중국인들을 조선에 데려오는 것이 받아들여져 추가로 [[쓰촨]] 지방 중국인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이들은 모두 노비가 되었다. 하지만 상국인 명나라 백성들을 노비로 쓴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한족이건 묘족이건 포로들을 총괄해서 다 묘노로 부르고 있다. 비단, 도자기, 기계공 등 기술자들을 주로 데려오려고 하고 있으며 기술이 없는 묘노들은 타치바나 무네시게의 병사들에게 보수로 주어지거나 대남도와 구주, 부여주 등지로 보내졌다. * '''[[흑인|오귀자]]''' 일본에 방문한 사신단이 흑인 [[야스케]]를 목격한 이야기로 존재가 알려진 것으로 보이며[* 사실 조선에 흑인이 들어왔던 기록은 태조 때부터 있었다. 그러나 별로 중요한 얘기도 아니고 그런 것에 관심 없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금방 잊힌 것.] 오다에게 고용되었다가 조선군에게 붙잡힌 해적 용병들 중에는 남만인들 외에 오귀자도 섞여 있다고 한다. 견서사가 귀환하면서 펠리페 2세가 보내준 [[무어인]] 병사 30여 명을 데려오며 주인공은 이들이 말 사육에 능하다는 것을 알고 강화도로 보내 안달루시아 말 육종에 쓰고 있다. 여기에 이기빈의 천회사 함대가 모카 항을 점령했을 때 모카 항 노예시장의 노예로 있던 노예들 372명을 천회사 함대 승무원으로 현지 징발(그리고 소수의 여성 노예들도 주상께 후궁으로 바치기 위해 데려가기로 결정)하면서 출신들도 조선에 눌러앉게 되며, 맥클로스키가 지휘하는 금군 숙호위 소속으로 편입된다. [[이슬람]]권 출신인데도 비번일 때 술을 마시러 오는 나이롱 신자들이라고.[* 사실 현대의 이슬람교도도 대부분 이렇다. 음주가 위법인 나라에 살면서도 옆나라 가서 술마시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 * '''[[우데게족]]''' 연해주 거주 소수 민족. 순서로 보면 오도리 다음으로 조선에 복속되었지만, 외딴 지역에서 사냥과 어업을 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이들이라 북해도의 존재를 알려준 것 외에 다른 일은 없다. 과거에 [[발해]]에 복속돼 있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지, 조선이 고려의 후신이라고 하자 '우리도 옛날엔 고려 사람이었다.'[* 발해는 내부적으로는 고구려 혹은 고려라는 국호를 계속 썼다.]고 밝힌다. 큰 비중은 없지만, 조선의 지배에 저항하거나 반발하지도 않고, 고려의 후예라고 밝힌 점을 미루어 보면 조선 조정에서 평가나 대접이 나쁘진 않을 듯하다. 아예 본인들 스스로 관청에 찾아와 호적을 등록하고 씨감자를 얻어갈 정도로 유순하고 호의적이다.[* 세금으론 가죽과 어포를 받는다고 하는데, 조선이 연해주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세금 안 내고 그냥저냥 사는 부락들도 꽤 많을 것이다.] 연해주 야인 인구가 3만이라는 것을 보면 우데게족의 수는 그 이하일 듯. * '''[[타이완 원주민|대남도 토인]]''' 대남도의 원주민들. 외부인의 머리를 잘라 모으는 호전적인 풍습을 가져 처음부터 조선인들을 선제공격하는 등 적대적 관계로 시작했다. 그러나 몇 년 지나며 조선의 기술적 우월함과 강함을 깨닫고 아타얄 부족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조선에 충성을 맹세하는 부족이 생기고 있다. 1600년 시점에는 그 수가 크게 늘어나 양응룡의 난 정벌 원정에 3000명의 대남도 토인병이 동원되기도 한다. 동원된 토인병들은 적의 머리를 마음껏 잘라 모으는 것에 희열을 느껴 보너스로 포로 노예를 주는것도 마다할 정도. 용맹함을 치하 받아 주인공이 남뢰군(南雷軍)이란 부대명을 하사했다. * '''[[아메리카 원주민|대미주 원주민]]''' 정문부가 이끄는 원동개척단과 만난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 화포와 총기의 위력을 보여주고 철제 바늘이나 고급 천 같은 물건을 주며 환심을 샀다. 충성을 맹세하고 정계비에 제물을 바치고 있으면 돌아와 더 큰 선물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원주민 부족 중 쉬눅, 스쿼미시, 올로내, 미웍, 파트윈 5개 부족 및 이누이트 2개 부족의 족장들이 귀국하는 정문부를 따라 조선에 입조해 주인공에게 신하가 될 것을 청한다. 조선이 여진족이나 대남도 토인 등 여러 원주민들을 다뤄본 경험이 있고 원정단 수도 적어 아직은 무조건 무력으로 대하지 않고, 주인공도 아들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대미주의 중요성을 설파할 때 반드시 원주민들을 잘 대해서 왕실의 충성스런 지지세력으로 만들라고 신신당부를 해 놨기에 그럭저럭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벌써부터 술맛을 알아버린 원주민들이 자기 부족 여자까지 팔아넘기고 언제나 강경파인 이괄에게 무자비하게 진압당하는 등 잠재적 불안요소가 있다. 그래도 치누크족 추장딸이 원사웅과 혼인하는 등 잘 풀리는 편. * '''[[조선족|고려인]]''' 원나라 때부터 요동에 살던 고려인들의 후예. 본질적으론 한민족이다. 건주위와의 포로 교환 협정에서 포로들을 보내는 대신 이들을 얻었으며 그 수가 무려 5만에 달한다. 주인공은 이들중 4만은 속말주, 1만은 평안도에 정착시켜 변방 지역 인구를 늘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